2022.04.05 ~ 07. 18 유럽여행 58 -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1

2022. 8. 13. 19:15해외 여행

2022.06.20~06.22 빌니우스(Vilnius)

우선 리투아니아를 살펴보면 발틱3국중 영토와 인구가 가장 크고 많다.

영토는 65,300㎢(한국의 65%)

인구 266만명으로 로마 카톨릭 79%, 러시아 정교 4%

전통적인 농업 지역으로 경제 활동 인구중 농업 종사 인원이 20%.

국민 1인당 소득 $25,000(40위)

 

간략한 역사

발트어족에 해당하는 리투아니아인들은 고대부터 중세까지 발트 신화 다신교를 믿으며

발트해 일대 늪지대에 고립되어 살았다.

이를 핑계로 십자군인 튜튼기사단과 라보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검우 기사단이

발트어족의 영토를 침략했으나 늪지대가 많은 리투아니아에서 게릴라전법에 고전하다 퇴각.

1236년 민다가우스왕이 부족을 통일하여 나라를 설립.

1362년 게디미나스대공의 아들인 알기르다스가 인근 국가들을 정벌하여 영토를 확장.

1386년 폴란드의 야드비가 여왕과 리투아니아의 요가일라 대공이 결혼하며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기독교 국가가 된다.

이후 비타우타스대공(1392~1430년 재위)이 우크라이나 지역까지 확장하며

동유럽 대부분을 차지하여 당시 유럽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된다.

1569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통일.

1795년 폴란드의 3차 분할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후 독립.

1940년 소련에 편입.

1941~44년 독일에 점령.

그 이후 소련에 통합

1991년 독립.(다음 백과,나무 위키 참조)

 

빌니우스의 역사적 개황

1323년 게디미나스왕이 리투아니아 수도로 정함.

1655~60년 러시아에 점령.

1702~06년 스웨덴에 함락.

1812년 프랑스에 정복당하는 등 수 많은 재난을 겪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빌니우스의 특징은

1588년에 시작되어 거의 150년간 유지된 동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 공동체의 문화 생활 중심지.

17세기 중엽에는 도시 전체 인구의 20%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하여 공동체를 파괴해서

1941년 8만명이었던 유대인이 45년에는 6천명으로 감소.(다음 백과 참조)

 

샤울라이에서 이동은

기차편 2시간22분(직항) 소요 1등석 21.8유로 29,000원

2등석은 매진이라 덕분에 좀 편하게 왔어요.(중간에 다과도 주네요)

샤울라이에서 타고온 기차
빌니우스 중앙역
빌니우스 중앙역
빌니우스 중앙역
빌니우스 숙소에서 내려다 본 거리 풍경
숙소앞 홀리데이 인 호텔 레스트랑(첫날과 마지막날 점심)
고기 스프가 맛있어요.
역시 호텔이라 소,돼지,양고기 모두 맛있어요.90유로(122,000원)
마지막날 점심 파스타 외 35유로(47,000원)
빌니우스 트램에 햄버거 광고
네리스강 Green Bridge 부근에 옛궁전
네리스강 Green Bridge 부근 라파엘 대천사교회
네리스강둑에 우크라이나 응원 문구.("우크라이나에 영광을")
네리스강변에 있는 멋진 건물인데 용도는 모르겠어요.
네리스강변에 직역하면 "통일의 꽃"인데 무슨 의미인지 몰라요.
민다가우스왕 다리와 게디미나스성
민다가우스왕 다리
도서관
리투아니아 국립박물관 (민다가우스왕 조각상)

게디미나스 성(Gediminas Castle)

게디미나스성,비타우타스 대공 동상
게디미나스성
게디미나스 성루
왼쪽 큰 건물이 박물관
오른쪽 흰 건물이 대공 궁전

 

멀리 세십자가상
박물관에서 대공 궁전 가는 길
대공 궁전 안쪽
게디미나스 대공 동상(1275~1341)
대공 궁전 앞 공원
대공 궁전에서 게디미나스 성루

빌니우스 대성당

빌니우스 건립 700주년 기념물
빌니우스 성당 부근
무슨 건물인지 몰라요.(호텔인가?)
리투아니아 대통령궁(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어요)

빌니우스 시내는 2편에 계속 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