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5 ~ 07.18 유럽여행 66 - 조지아 시그나기

2022. 8. 23. 12:44해외 여행

유럽여행의 막바지에 사실상 마지막 여행지인 조지아에 18박19일을 지냈습니다.

조지아의 여행 지역이 넓어 이동 시간이 길고 힘들어 중간에 휴식 시간을 좀 넣고

물가도 저렴해서 그동안 취소한 여행 일정(모로코 사막투어,프랑크푸르트 주변)을

조지아에서 보내기로 했어요.

블로그는 시그나기,카즈베기,메스티아,보르조미,트빌리시 순서로 올리겠습니다.

 

우선 조지아의 개황

조지아는 지정학적으로 지중해 문명과 이슬람 문명 사이에 자리잡아 

오랫동안 그리스,로마,페르시아,몽골,티무르,오스만 제국,러시아 등의 침략과 강제 점령을 거쳤으나 

종교적,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나라로 문화적 자긍심이 강하고

카프카스산맥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다채로운 음식,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주 생산국으로

여행객에게는 아직 때묻지 않은 환경이 매력적인 나라이다.

면적 2/3가 산악지대로 카프카스산맥의 속하는 봉우리들이 보통 4,600m 이상이다.

평지에는 포도 재배와 목축을 주로 한다.

기계공업을 중심으로 일반 공업도 상당히 발달해 있다.

조지아는 연극과 건축문화의 전통이 살아 있어

유럽과 여러 지역의 연극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고

아르메니아 건축과 더불어 비잔틴 양식 발전에 크게 기여를 해서

현존하는 교회와 수도원의 대형 건축물에서 흔적을 볼수 있다.(어떤 분의 블로그 참조)

 

면적 69,000㎢(한반도의 31%)

인구 400만명(조지아인 84%, 아르메니아인 6%)

종교 조지아정교 84%, 이슬람교 10%

1인당 국민소득 $5,620(101위)

 

역사

구석기시대 초기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콜치스"라고 알려진 전설적인 富의 땅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까지 알려졌다.

BC 65년 로마제국에 합병

AD 337년 기독교 전파

이후 3세기 동안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제국간의 분쟁에 휘말림.

654년 이후 아랍의 칼리프들이 트빌리시를 거점으로 토후국을 건설.

8세기말~12세기에 아르메니아의 바그라티드 왕조가 이지역을 통일.

975~1014년 바그라트 3세가 조지아 동부와 서부의 모든 공국을 하나로 통일.

1184~1213년 타마라여왕의 재임시 동쪽의 아제르바이잔에서 북서쪽의 체르케스까지

영토를 넓혀 범 카프카스제국을 이루어 최고의 번영을 누린다.

1220년 몽골의 침략

1386~1403년 티무르의 공격으로 경제적,문화적으로 치명적 타격을 받는다.

1453년 콘스탄티노풀(이스탄불)이 오스만 투르크제국에 함락하며 서방국가와의 교류도 단절되고

그후 3세기에 걸쳐 투르크와 페르샤인들의 침공이 계속된다.

1801~64년 조지아내의 왕국들이 차례로 러시아에 합병.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의 혁명으로

1917~21 독립하나

1922년 소련에 편입되고

1936년 소련연방공화국 일원이 된다.

1991년 독립

1992년 북서쪽의 아브하지야 자치국과 북쪽의 남오세티아 자치국의 분리 운동으로 내전 발생.

1993년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이 되고 UN 조지아 정전 감시단이 설치된다.(다음백과 참조)

☆ 아브하지야, △ 남오세티아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트빌리시까지는 Fly One 항공편으로 45분 소요 148유로(200,000원)

 

2022.06.29~07.01 시그나기(Sighnaghi)

트빌리시에서 동쪽으로 110Km 떨어진 800m 고지대에 위치.

시그나기가 속한 카헤티주는 조지아 와인의 70%를 생산하는 최대 와인 생산지.

과거 조지아의 무역과 상업의 핵심 지역으로 타 민족의 침략이 많아

1770년 에라클레 2세의 명으로 건설된 5Km의 요새 성벽이 남아 있다.

관광지로 꽤 알려진 곳인데 변변한 관광안내소도 없어 구글 지도에 표시된 곳을 찾으니

시청안에 있어 관광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나와 응대를 하는데

간단한 시내 지도만 있고(그나마 현지어) 소개 팜프렛도 없대요.

조금만 신경을 쓰면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텐데 아쉽네요.

최대 와인 생산지라 와이너리 투어는 있지만 별로 관심이 없어 안가고

식당에서 하우스 와인으로 맛만 봤어요.

여기서는 집집마다 와인을 직접 담궈 먹는대요.

시내는 상당히 작아 첫날 30분 정도 걸어서 둘러보고 

둘쨋날 보드베수도원과 성벽길을 걸으며 2박3일을 푹 쉬었어요.

 

이동은 트빌리시 삼고리 버스 터미널에서 마슈르카로 1시간50분 소요 10라리(GEL) 4,500원

 

보드베수도원에서 돌아오며 건너다 본 시그나기
트빌리시 삼고리 버스터미널
시그나기행 마슈르카(Marshrutka)
시그나기 버스터미널에 붙은 시간표

제2차 세계대전 기념공원(시청 옆)

2차 대전시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방어전에 동원돼

희생된 이 지역 전사자들의 명단과 활약상을 벽에 부도로 새겨넣었다.

2차 세계대전 기념공원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어요.
솔로몬 도다쉬빌리(1805~1836) 동상(이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철학자,문학가)
시그나기 숙소에 도착하니 도시 전체가 정전이라 시원한 공원 벤치에서 빵으로 점심을 떼웠어요.
공원에서 조금 걸어가니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 그림.
성문도 보이고
이런 풍경에 관광객들이 엄지를 세우나봐요.
성문 뒷쪽에서 공원 방향
시그나기 시청
시청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
결혼증명서 발급소(24시간 운영) 앞 신부 조각상
시그나기 분수
왕진가는 의사(시그나기 시내에 이런 재미있는 작은 조각상이 많아요)
숙소가 있는 오르막 골목(트빌리시 방향)
시그나기 주변 풍경

이틑날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갔다 따라오는 개들이 무서워 포기했어요.

조지아에는 길거리개들이 많아 사람들을 따라다니지만

순해서 위험하지 않다고 하는데 우리 형제들은 개를 좀 무서워해요.

피로스마니 호텔과 레스토랑(이 지역 출신의 화가라고 호텔 이름에도 부치네요)
숙소 부근 골목
이틑날 숙소에서 2.2Km 떨어진 보드베수도원에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시그나기.

보드베 수도원(St.Nino Bodbe Monastery)

4세기에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

9세기 건축했다 17세기에 복원.

보드베수도원 종탑
기도실인듯
내부 촬영 금지로 외부만 찍었어요.
시그나기 마을을 향해 짚라인 타는 사람.

시그나기 국립박물관

이지역 고대 유물과 피로스마니 작품을 전시.

입장료 7라리(3,200원)

박물관 앞 조각품
청동기시대(BC2500~BC2000) 항아리
위의 항아리와 동시대
4~5세기 청동 램프
16세기 점토 쟁반(유광)
누구 작품인지는 확인 못했어요.

박물관에 전시된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 1862~1918)

이 지역 부근 출신으로 조지아의 민족 화가로 불린다.

8살에 고아가 된 그는 철도 노동자와 간판그리는 일을 하며 학교에는 못가고 혼자 그림을 그렸다.

원초적인 단순함과 원시적인 그의 그림을 러시아의 시인이던 동생이

1910년 모스크바 중앙지에 소개하며 세상의 주목을 받았지만

조국에서는 조지아의 예술을 모욕한다며 무시함.

1912년(50세) 조지아의 화가협회에 가입하였으나 동료 화가들의 혹평과 비판에

세상과 일체의 관계를 끊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린다.

그때 유럽에서는 그의 그림을 인정하고 주목하기 시작한다.

1918년 56세의 나이로 홀로 지하실에서 가난과 굶주림으로 지내다 영양실조로 죽는다.

근처 공동묘지에 신원미상의 행려병자로 취급해 매장되어 그의 묘지가 어디인지 확인이 안되고 있다.

1926년 그의 작품 도록이 출판되자 유럽 화단에서 그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한다.

피카소도 그의 그림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어떤 분의 블로그 참조)

현재는 트빌리시 국립미술관에 상설 전시관이 있을 정도로 민족화가로 대접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019년9월 남프랑스 여행때 아를 문화재단 전시실에서 특별 전시중인

그의 작품을 처음보고 그동안 보아오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그의 조국에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워요.(당시 제 블로그에 소개)

과일 상점
노을녁에 타작 1915~1916
Molokani Carousing(몰로칸의 술잔치) 1905
Sona의 Concertina 연주(작은 아코디온과 같이 생긴 악기) 1913
어미 곰과 새끼들 1910~12
노동자 Soso 1904
포도 수확기(Vintage)
Shorta Rustaveli 1916~18(조지아 민족시인)
타마라 여왕 왼쪽 1913~14 오른쪽 1916~18
피카소(1881~1973) 피로스마니의 초상 1972
박물관에서 내려다본 시그나기
시그나기 성문(성벽가는 길)

성 조지교회(St.Geoge Basilica)

성 조지교회 앞

시그나기 성벽

성벽길을 걸을 수 있는데 표지판이 없어 물어물어 갔어요.

관광 진흥에 대한 당국의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성벽 요새
성벽길 입구
걸을 수 있도록 정비는 잘 했네요.
남아 있는 성벽
성벽길 끝지점에 성문
숙소 마당(뒷쪽 수영장 공사중이라 정리가 덜 됐어요)
숙소 마당
숙소 리셉션 및 휴게실(방이 좁아 노트북 작업을 여기에서 했어요)

숙소에 있는 식당

가족이 운영하는 곳으로 숙박 시설은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듯 깨끗해요.

숙박은 Triple Bed,조식 포함 1박에 127라리(57,000원)

현지 음식으로 닭찜,멕시칸 포테이토,하우스 와인이 엄청 맛있어요. 89라리(40,000원)

시그나기에서 뷰 맛집이라는 카바도니호텔 레스토랑.

파스타랑 몇가지 주문했는데 시간도 엄청 걸리고 맛도 별로 였어요.

85라리(38,000원)

뷰 맛집이라는 식당에서 시그나기

여담으로 피로스마니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백만송이의 장미(Millions of Red Roses)

피로스마니가 상점의 간판을 그리던 어느 날 평소 짝사랑하던 프랑스의 아름다운 여배우

마르가리타(Margarita)가 순회 공연차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그림과 전 재산을 팔아

백만송이의 붉은 장미를 사서 그녀가 하루만 묵는 호텔앞 광장을

온통 꽃밭으로 만들어 그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틑 날 아침에 일어난 그녀가 창문을 열자 온 세상이 장미로 뒤덮힌 장면에 환호성을 지르며

누구인지를 알아보려 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그녀의 열렬한 팬인 어떤 부자가 보낸 것으로 생각하고

예정된 기차로 떠난다.

그가 죽은 후 시간이 흘러 빛을 보게되어 그의 개인전이 열렸을때

그녀가 찾아와 그가 그린 자신의 그림을 보고 조용히 떠난다.(어떤 분의 블로그 참조)

(이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고 사실이 아닌 허구라는 설도 있다.)

1981년 라트비아의 Raimonds Pauls가 작곡한 것에

1982년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Andrei Voznesenskii)가

불우하고 고독했던 삶에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가사로 만들어

러시아 여가수 알라 푸가체바(Alla Pugacheva)가 불러 유명해졌다.

국내에는 1990년 임주리가 리메이크곡을 불렀고

1997년 심수봉이 불러 유명해졌다.

피로스마니의 자화상과 그가 그린 마르가리타

https://youtu.be/MTIEy8weeN8

우크라이나의 Ani Lorak

 

별로 볼것 없는 예쁜 마을 시그나기에서 푹 쉬다 갑니다.

다음은 카즈베기편입니다.